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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象想), 그리고 IMAGE & ID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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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상상이니 상상력의 한자는 생각상(想)에 모양상(像), 想像을 쓴다. 그런데 웹장이 대문이나 훗날 법인 상호로 상상을 쓸 때는 코끼리 상(象)자에 생각상(想)를 쓸거다. 그냥 상상이라고 할 때는 원래 뜻대로 생각의 모양이나 더 적극적인 의미 부여라면 창의력 쯤으로 볼 수 있겠다.


꼭 기존 한자를 비틀어 쓰는 이유는 동양학에서 우주변화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우주가 자기의 운행법칙을 상(象)으로 드러난 것이 형(形)이라는 설명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니 모양이 코끼리를 닮았다고 해서 코끼리 상자가 아닌 것이다. 전에는 상상을 想象으로도 같이 썼으나, 그나마 코끼리를 생각한다는 우스운 수준 밖에 안되었으니 내가 생각하는 象자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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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왜 象想인가? 그 의미를 영어로 표시하면 명확해진다. image & idea다. 象은 image, 즉 설계도, Logos의 개념이다. 오감으로 알 수 있는 形의 반대 개념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말하자면 성서 요한복음 첫부분에 나오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의 말씀이 바로 象인 것이다. 그것은 하늘의 설계도요 로고스인 것이다.


그 말씀이 形으로 나타난 것이 우주만물이요, 자연현상인 것이다. 象이 形으로 나타나는 과정을 창조라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창조란 象이 形으로 나타나는 과정이 아니라 形으로 전개되는 과정, 즉 봄이 된 듯하니 슬슬 싹을 틔워볼까가 아니라 스스로 그리하게 된, 누군가의 중간 개입이 없이 스스로 전개되는 것이다.


이것을 한동석이 쓴 <우주 변화의 원리>에서는 "이와 같이 象과 철학은 불가분의 양자(兩者)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의 象을 연구하는 목적은 철학적 진리를 탐색하며, 또는 明을 양(養)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다만 象을 연구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數와 괘(卦)를 관찰해서 象을 알고자 한 것이 수상(數象)이나 괘상(卦象)인 것이다.


다시 성서로 돌아가면 창세기에 천지 창조가 끝나고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만물을 주관하라"는 3대 축복을 해주는 광경이 나온다. 말하자면 하늘의 창조성을 인간에게 부여해준 것이다. 하늘의 象이 形으로 나타난 것은 창조의 결과인 우주만물일 것이나 하늘의 象을 닮아 창조성을 가진 것이 想인 것이다.


그래서 象想은 생각의 모양이니 코끼리를 생각한다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의 작용 쯤으로 해석되는 상상(想像)이 아니라 하늘의 생각을 땅에 펼치는, 하늘의 image가 땅의 idea로 전개되는 과정을 의미하고 있다.


여기서 주요 핵심은 象이 想으로 나타나는 과정이 창조인데, 그것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준비가 되어 있으면 하늘의 image는 스스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때 유행했던 시크릿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주공간에 대고 뭘 간절히 바라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창조는 일방향으로만 전개된다는 것이다. 라디오 수신기의 주파수만 맞추면 특정 방송이 수신되듯 자기 욕심을 내려놓고 자연의 순리대로 내 마음 밭을 가꾸면 나를 통해 그냥 나타나는 것이 창조인 것이다. 여기에 방해되는 것이 탐진치(貪嗔癡) 삼독(三毒)인 것이다. 아집과 욕심, 무지만 내려놓으면 자연 그대로 나타는 것이 내 안의 성령의 작용이다. 그래서 인간으로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감사(感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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