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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75e71b27fffba0e85dc835f07fe3e_1625431544_7146.jpeg[네덜란드(네덜란드어: Nederland 네데를란트 [ˈneːdərˌlɑnt], 영어: Kingdom of the Netherlands)는 서유럽과 카리브 제도에 걸쳐 있는 네덜란드 왕국의 구성국이며, 수도는 암스테르담이지만, 정부와 각종 행정기관이 밀집한 도시는 헤이그다. 홀란트(Holland) 지방에서 딴 이름인 홀란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네덜란드 왕국(Koninkrijk der Nederlanden)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로 국토의 25%가 해수면보다 낮은 지역이다. 네덜란드라는 이름도 '낮은 땅'이란 뜻이다.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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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벨기에, 그리고 바다를 사이에 두고 영국에 둘러싸여 있으며 총 면적은 4만 1000km2이다. 북해에 면해 있는 국토는 라인 강(네덜란드어로는 레인 강(Rijn)), 마스 강(Maas), 스헬더 강(Schelde) 등이 만드는 삼각주를 중심으로 저지대가 펼쳐져 있다. 남서쪽은 구릉지대로 되어 있으나 림뷔르흐 주에 있는 이 나라 최고 지점조차도 321m에 지나지 않는, 전체적으로 평탄한 국토를 가지고 있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카리브 해의 해외 영토인 아루바 섬과 퀴라소, 신트마르턴, 보네르섬, 사바섬, 신트외스타티위스섬도 포함한다. 과거에는 '네덜란드령 기아나'라는 이름을 가진 수리남은 물론 본국의 100여 배도 넘는 땅인 인도네시아도 '네덜란드령 동인도'라는 이름으로 식민지에 포함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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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네덜란드는 위도가 높은 곳에 있지만, 북부 지역은 북해의 난류와 편서풍의 영향을 받는 해양성 기후로 1년 내내 온화한 편이다.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는 작지만, 날씨는 변하기 쉽다. 그러나 남동부 지역은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기후가 거칠고 기온차도 심하다.


정치


네덜란드는 입헌군주제 국가로서 현재의 군주는 빌럼알렉산더르 국왕이다.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네덜란드 의회는 상원과 하원이 있는 양원제로 임기는 각각 4년이다. 행정부 장관은 총리에 의해 지명되며 14개의 행정부서가 있다. 현재의 총리는 마르크 뤼터이다. 최고법원과 5개의 고등법원에 각 지방법원과 간이법원이 속해해 사법권을 행사한다. 법관은 최고법원과 법무장관의 추천으로 국왕이 임명한다. 헌법재판소는 없으며 법률의 합헌 여부는 특별 법정에서 가린다.


경제


상업과 교통의 발달로 네덜란드는 17세기에 부유한 나라로 성장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상업과 교통은 네덜란드 경제를 주도하는 핵심 부문이다. 19세기에 북해와 라인 강을 직접 연결하는 수로가 완공된 이후, 로테르담 항구는 독일의 루르 공업 지대와 수로로 연결되어 크게 성장했다. 오늘날 로테르담 항구에는 하루 평균 100만 톤의 물자가 이동하고 있다. 20세기에 네덜란드는 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던 식민지들을 잃었지만 여전히 경제 선진국으로 1인당 국내 총생산이 유럽 연합 회원국의 평균보다 높다. 또한 첨단 기계와 영농 기술 도입으로 농업 부문에서도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 한편 네덜란드는 복지정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80년대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 14%인 80만 명이 실업자였고 장해연금과 조기퇴직 프로그램에 의해 노동 시장에서 제외된 근로자 수도 이와 같은 규모였다. 1986년 스웨덴의 사회학자 예란 테르보른은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실업상태를 더 오래 지속하는가?》를 통해 네덜란드의 고용 실패를 지적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1981년부터 1983년까지 네덜란드의 경기침체는 유난히 심각했다. 많은 경제 부분이 과잉 생산의 부작용을 겪었고 25개 제조업체 중 1개꼴로 파산상태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만 3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없어진 일자리의 대부분이 제조업의 정규직 근로에서 발생했다. 실업자는 매달 1만 명씩 증가하여 1984년에는 80만 명까지 증가했고 노동조합들은 전체 노조원의 17%를 잃었으며 남은 노조원들 중 4분의 1이 복지 혜택의 수혜자가 되면서 노동없는 복지 상태에 이르렀다. 미취업자들에 대한 사회보장 혜택은 더 크게 감소했다. 광범위한 실업 상태에서 얻은 결론은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는 범국가적 인식의 확산이었다.


우선 1982년 11월 24일 바세나르에서 세계시장의 변화에 대응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바세나르 협약이란 이름의 임금인상 억제 정책이 실시되었다. 빔 코크의 노동조합연맹과 크리스 판 베인의 경영자단체연합 사이에서 이뤄진 중앙협약에 의한 임금인상 억제 정책은 변화하는 해외 및 네덜란드 내 시장에서 심화되는 국제경쟁에서 네덜란드 경제를 적응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후 조합주의가 되살아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초에는 사회보장체제의 전반적인 재정비가 이뤄졌으며 1990년대 중반에는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고 임금수준과 복지혜택 사이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능동적인 노동시장 정책이 채택되었으며 이러한 정책 변화는 정치적 지지를 얻었다.


1990년대 들어서 네덜란드는 1980년대 일관적인 임금인상 억제 정책, 사회의 안정화, 개혁정책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성공적으로 실업률을 반감시켰다고 평가받는다. 1983년 14%의 실업률을 1997년에는 6% 수준으로 내렸는데 이는 유럽 연합 평균인 11%의 실업률보다 낮은 수준이다. 미국과 같은 수준의 고용증가를 겪기도 했으나 미국처럼 급격한 빈부격차의 증가를 경험하진 않았다. 다만 이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보다는 높은 수준이다. 또한 새롭게 만들어진 일자리 중 다수가 비정규직이거나 시간제 근로였고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증가했으나 55세에서 64세 중장년층 남성 취업률은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감소했다. 능력 위주의 직원 선발이 이뤄지면서 발생한 외국인과 미숙련근로자의 낮은 취업기회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15 청년 실업률은 가장 낮은 수준인 5.5%로 떨어졌으나 완전고용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시간제 근로에 의존하는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네덜란드에서 경제성장의 가장 큰 원천은 해외시장이다. 네덜란드의 재화, 용역의 수출입 규모는 1950년 국내총생산의 70.9%, 1970년 74.8%, 1994년 89.2%에 달했는데 영국의 41.8%, 독일의 39.3%, 프랑스의 34.2% 미국의 17.8%, 일본의 14.6%와 비교하면 높은 수치이다.


네덜란드에서 중공업 분야는 무역업과 제조업에 비해 다소 늦게 발달했다. 북해와 암스테르담을 연결해 주는 북해 운하의 입구에는 에이마위던(IJmuiden)이 있는데, 이곳에는 코크스 제조 공장과 네덜란드 최대의 제철, 제강 공장이 있다.


네덜란드는 천연자원이 풍족하지 않은 편이다. 림뷔르흐 주의 탄전은 1970년대에 이미 문을 닫았으나 북해 연안의 그로닝겐 지역에서 대규모 가스전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천연 가스가 매장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의 상당 부분은 수출된다. 석유도 생산되지만 천연가스에 비해 양이 적어 네덜란드 경제에 큰 기여는 하지 못한다. 헹겔로와 델프제일 근처에는 엄청난 양의 암염이 매장되어 있는데, 일부는 산업용으로 국내에서 사용하고 나머지는 수출된다.


네덜란드의 농업은 최첨단 기술과 높은 생산성을 자랑하고 있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농업 인구는 감소하고 있으나, 경영 규모가 커져서 생산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국토의 4분의 1정도가 농지로 이용되는데, 이중 약 30%가 목초지이다. 네덜란드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약 3분의 2는 세계 각국으로 수출된다. 또한 겨울철 날씨가 온화하고 토양이 기름진 네덜란드는 원예 농업이 발달했다. 수천 개의 온실에서는 토마토, 오이, 피망 같은 채소가 첨단 시설로 재배되고 있다. 헤이그와 뫼즈 강 하구 사이, 델프트 주변과 로테르담 북부에는 유리 온실이 줄지어 있다.


축산업도 네덜란드 경제에 큰 역할을 한다. 자동화된 대규모 농장에서 젖소, 돼지, 닭, 오리 등을 대량 사육하고 있고 유제품 관련 산업도 잘 발달했다. 하우다, 에담, 레르담과 같은 도시는 치즈 생산지로 유명하며, 이 지역에서 생산된 치즈는 도시의 이름을 따서 불린다. 4월에서 9월까지 알크마르에서는 금요일 아침마다 전통 치즈 시장이 열린다. 전통 치즈 시장에서는 커다란 치즈 경매가 진행되고 관광객들은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알크마르를 찾는다.


2009년 5월 10일 유로스타트는 네덜란드가 유럽에서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라고 발표했다.


무역


2017년 기준으로 네덜란드의 주요 수출 상대국은 독일(21.91%), 벨기에(10.25%), 영국(8.58%), 프랑스(8.03%), 미국(4.36%)이며, 주요 수입 상대국은 독일(18.47%), 벨기에(10.70%), 중국(9.02%), 미국(7.65%), 영국(5.33%)이다.


2017년 기준으로 총수출액은 505,941백만 달러, 총수입액은 450,076백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 품목은 석유 제품(44,034백만 달러), 전자 부품(15,565백만 달러), 무선 통신 기기(15,492백만 달러), 기타 의약품(15,492백만 달러), 독극물(7,256백만 달러)이다. 주요 수입 품목은 석유 제품(28,408백만 달러), 원유(28,328백만 달러), 무선 전신 장치 용 송신 장치(18,261백만 달러), 전자 부품(16,071백만 달러), 기타 의약품(7,317백만 달러)이다.


문화


회화로는 17세기 황금시대와 19세기에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뛰어난 화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17세기 초에는 유화 기법의 선구자 프란스 할스가 활약하였고, 중엽에는 유화 기법의 완성자로 일컬어지는 렘브란트 판 레인이 나타났다. 중산 계급이나 농민의 생활을 주로 그린 얀 스테인, 풍경화가 로이스달 등도 활약했다. 실내화에서는 우아한 광선을 살린 그림으로 유명한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를 들 수 있으며, 19세기에는 강렬한 개성을 가진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등장한다.


네덜란드의 공예품으로는 델프트(Delft) 도자기와 붉은 색의 아름다운 마쿰(Makkum) 도자기를 들 수 있다. 도자기는 16세기 말에 이탈리아의 기술을 받아들임으로써 시작하였고, 17세기부터 중국 등의 영향을 받아 18세기에 전성기를 맞았다.


우리나라와의 관계


네덜란드는 조선 시대에 벨테브레가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들어온 일, 헨드릭 하멜도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도착한 일 등으로 한국과 처음으로 만나게 된 유럽 국가이다. 네덜란드는 1949년 7월 25일, 한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였으며, 한국 전쟁 때에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한국을 지원하였다. (보병 1개 대대, 군함 1척) 헤이그에 한국 대사관(주 헤이그 국제기구 대표부 겸임)이 개설되어 있다. 서울에 주한 대사관이 개설되어 있다. 한국의 대(對)네덜란드 수출은 46억2698만USD, 네덜란드의 대(對)한국 수출은 44억2550만USD(각 2011년)에 달하여, 네덜란드는 한국에 있어서 제27위의 수출국이자 제25위의 수입국이다. 모두 1,771 명(재외국민 1,663명, 시민권자 108 명)의 한민족들이 네덜란드에 거주(2010년 12월 기준)하고 있다. 한국과 네덜란드는 KLM과 대한항공의 노선으로 운항하고 있다. 중등 교육의 경우 한국에서는 네덜란드어가, 네덜란드에서는 한국어가 개설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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