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AI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합니다. 엔비디아(NVIDIA)가 기록적인 실적을 발표했음에도 주가가 요동치고, 일각에서는 'AI 거품론'을 강하게 제기합니다. 혁신의 정점에 선 것 같으면서도, 막상 우리 손에 잡히는 변화는 미미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혼란스러운 시기를 단순히 '거품'이나 '일시적 유행'으로 치부하기에는, 물 밑에서 움직이는 자본의 규모와 역사의 흐름이 너무나 거대합니다. 오늘은 현재 AI 기술의 위치를 냉정하게 짚어보고, 앞으로 펼쳐질 변화의 파도 속에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텅 빈 고속도로와 3,800억 달러의 베팅
현재 AI 기술 단계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제 막 시작된 인프라 구축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젠슨 황을 비롯한 수많은 전문가가 지금을 AI의 "시작 부분"이라고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술의 실체를 '눈에 보이는 서비스'로 판단하곤 합니다. 하지만 거대 기술 기업들의 움직임은 다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알파벳, 메타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2025년에만 약 3,800억 달러를 AI 인프라에 쏟아붓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금액이 얼마나 천문학적인지 감이 잘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비교하자면, 지난 38년 동안 미국 연방정부가 주와 주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건설에 투자한 총액이 약 3,000억 달러입니다. 즉, 지난 40여 년간 미국 전역의 혈관을 뚫는 데 든 비용보다 더 큰 금액이, 단 1년 만에 AI라는 가상의 도로를 까는 데 투입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AI 시장은 마치 고속도로 공사는 한창인데, 아직 그 위를 달릴 트럭이나 승용차가 보이지 않는 상황과 같습니다. 도로(인프라)가 깔려야 물류가 이동하고 도시가 연결되며 경제적 가치가 폭발하듯, AI 역시 인프라가 완성된 후에야 실질적인 유용성이 증폭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혼란은 거품이 꺼지는 신호가 아니라, 거대한 고속도로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인 셈입니다.
철도 버블의 교훈과 'AI 경제'의 정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러한 패턴은 낯설지 않습니다. 1840년대 영국을 휩쓸었던 '레일웨이 버블(Railway Bubble)'이 대표적입니다. 당시 영국 GDP의 10% 이상이 철도에 투자되었습니다. 이는 현재 미국 GDP 대비 AI 투자 비율(6% 미만)을 훨씬 상회하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산업 버블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철도 기술은 지금의 KTX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었지만, 그 미미한 기술만으로도 세상은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AGI(범용 인공지능)와 같은 영화적 상상력이나 초월적 기술의 등장 여부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불완전한 기술로도 우리의 삶이 바뀌고 있는가'입니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초기 스마트폰은 지금보다 훨씬 느리고 투박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세상의 산업 지도가 재편되었습니다. 진정한 'AI 경제'의 도래는 인간을 뛰어넘는 슈퍼 인텔리전스가 등장할 때가 아닙니다.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오면 다시 가지러 가야 할 정도로 불안함을 느끼는 것처럼, AI 없이는 업무, 소통, 정보 처리 등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지는 순간, 바로 그 시점이 AI 경제가 시작되는 때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 길목에 들어서 있습니다.
일자리의 파괴와 창조, 그 사이의 줄다리기
"AI가 내 일자리를 뺏을까?" 많은 분이 가장 우려하는 질문입니다. 기술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가집니다. 일자리를 없애는 힘(대체 효과)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힘(생성 효과)입니다.
과거 냉장고가 발명되면서 뉴욕의 거대 산업이었던 얼음 채취 및 운반업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냉장 산업은 더 거대해졌고, 일자리는 다른 형태로 재창출되었습니다. 은행에 컴퓨터가 도입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80년대, 장부를 수기로 작성하던 수많은 백오피스 직원이 사라졌지만, 은행 업무의 효율화는 금융 서비스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결과적으로 금융 산업 전체의 고용 규모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도입하는 기업의 철학입니다. 비용 절감만을 목적으로 기술을 쓴다면 일자리는 줄어들 것입니다. 하지만 독일의 한 은행이 수수료 무료 정책으로 시장 파이를 키웠듯, 기술로 얻은 효율을 고객 혜택으로 돌려준다면 시장은 커지고 고용은 늘어납니다. 따라서 "기술이 발전하면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단순한 인과관계의 공포보다는, 사회와 기업이 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깨어있는 눈으로 감시하고 요구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경력직의 전성시대와 교육의 딜레마
최근 스탠퍼드 등의 연구 결과는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줍니다. AI 도입 이후, 미국 노동 시장에서는 개발자나 마케팅 등 주요 직군에서 '주니어' 레벨의 채용이 위축되고 있습니다. 반면,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의 가치는 오히려 상승하고 있습니다.
이는 AI가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도구는 쓰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집니다. 경험 많은 시니어는 AI라는 강력한 엔진을 달고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지만, 업무의 맥락을 모르는 주니어에게 AI는 그저 정답을 베끼는 도구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문과 출신이지만 코딩 도구를 활용할 줄 아는 인재들이 개발자로 채용되는 등, 창의력과 도구 활용 능력이 결합된 새로운 인재상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교육 현장에 거대한 숙제를 던집니다. 현재 대학과 학교는 '카오스' 상태입니다. 학생들은 AI로 과제를 해결하고, 학교는 이를 막기 위해 애씁니다. 하지만 사회에 나가면 AI를 써야만 살아남는 현실에서, 시험 볼 때만 '백지 상태'를 강요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계산기가 발명된 후 주판을 가르치는 대신 수학적 사고를 가르쳤듯, 이제는 AI 사용을 전제로 한 새로운 교육과 평가 방식이 시급합니다.
바이오테크놀로지, AI가 여는 새로운 지평
AI의 유용성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분야는 바이오테크놀로지입니다. 최근 구글의 AI 연구진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것은 상징적입니다. 그들이 개발한 '알파폴드'는 인간이 풀지 못했던 단백질 구조를 밝혀냈고, 이는 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습니다.
물론 인체는 수백 개의 변수가 얽힌 복잡계이기에 당장 내일 모든 암이 정복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mRNA 백신이 정보학을 통해 빠르게 개발되었듯, AI는 생물학적 난제들을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으로 풀어내는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이고 있습니다. 이는 AI가 단순히 챗봇을 넘어,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열쇠가 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호모 하빌리스의 후예들: 결국은 '도구'다
우리는 '호모 하빌리스(도구를 쓰는 인간)'의 후예입니다. 인류는 맨손으로 생존 투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돌도끼부터 스마트폰까지, 우리의 뇌는 항상 도구와 연결된 '하이브리드' 상태로 진화해 왔습니다.
AI 시대의 생존 전략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창의적이 되어라" 같은 추상적인 조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단 써보라"는 행동입니다. AI가 완벽해서 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완전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증하며 나의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파트너로 삼아야 합니다.
글을 쓸 때 첫 문장이 막히면 AI에게 물어보십시오. AI는 우리를 대신해 1등을 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게 돕는 '페이스메이커'입니다. 텅 빈 고속도로에 차들이 들어차기 시작할 때, 운전대를 잡을 준비가 된 사람은 바로 지금, 그 도구에 익숙해진 당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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